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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삼국유사에 숨겨진 '신라의 비밀코드'

입력:2012-08-16 17:26
수정:2012-08-17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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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제48대 경문왕 응렴은 낭도였을 때 헌안왕에게 대답 한번 잘해서 왕의 사위가 됐다. 응렴의 지혜로운 대답에 감동한 헌안왕은 두 딸 중 하나를 아내로 맞으라고 했다. 맏공주는 못생겼고 둘째는 아름다웠다. 응렴의 부모는 예쁜 둘째공주를 취하라고 했으나 낭도의 우두머리였던 범교사는 첫째를 취하라고 조언했다. 석 달 뒤 중병에 걸린 왕은 신하들을 불러 이렇게 일렀다. “짐에게 아들이 없으니 장례 후의 일은 장녀의 남편인 응렴이 잇도록 하라.” 결국 응렴은 못생긴 맏공주를 취한 덕에 석 달 만에 왕이 됐고 예쁜 둘째 공주까지 얻게 됐다.

《삼국유사》는 이 같은 이야기와 함께 경문왕의 침전에서 날마다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고 전한다. 왕의 침전에 매일 날이 저물면 무수한 뱀들이 몰려들었으나 왕은 “뱀 없이는 편히 잘 수 없다”며 쫓아내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 또한 매번 잘 때 혀를 내밀면 온 가슴을 덮었다고 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정민 한양대 교수는 신간 《불국토를 꿈꾼 그들》에서 《삼국유사》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에 함축된, 혹은 가려진 의미를 밝히는 코드를 제시한다. 가령 경문왕의 침전에 몰려든 뱀들은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정변에서 왕을 지키는 수호세력이다. 이들은 바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성골 귀족들 사이에서 불안한 왕권을 지켜내기 위해 침전을 지켰던 국선 응렴 시절의 낭도들이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혀가 온 가슴을 덮었다는 건 또 뭘까. 정 교수는 “가슴을 가득 덮을 만큼 길고 넓은 혀라면 장광설(長廣舌)이 떠오른다”고 했다. 장광설은 얇고 부드러우며 길게 내밀면 얼굴을 감쌌다는 석가모니의 혀를 이르는 말로, 지혜를 뜻한다. 왕이 잘 때에만 혀를 내밀었다는 건 자신의 지략을 평소에는 감췄다가 추종세력이 곁에 있을 때만 내보였다는 뜻이라는 설명이다.

신라 제25대 진지왕은 음탕한 짓을 일삼다 즉위 4년 만에 폐위된 것으로 《삼국유사》에 전해진다. 사량부의 서녀(庶女)가 몹시 아름다워 왕이 취하려 했으나 남편이 있다며 거절했다. 폐위된 왕이 죽고 나서 서녀의 남편도 죽었다. 그러자 홀연 왕이 밤중에 찾아와 서녀에게 동침을 청했고, 사내아이를 낳았으니 이름을 비형이라 했다.

비형은 밤이면 두두리(도깨비) 무리를 부리며 놀았고 도깨비들과 함께 신원사 북쪽 도랑에 하룻밤 만에 ‘귀교’라는 큰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저자는 이를 진평왕이 신라를 불국토화하는 데 방해가 되는 세력을 포섭해가는 노력이라고 해석한다. 또한 비형이 진지왕의 적자인 용춘과 동일 인물일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용춘의 아들 김춘추가 태종무열왕이 되고 진지왕 계열이 다시 진골 왕조를 열어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는 스토리 구조를 선보인다.

2009년 익산 미륵사지석탑에서 발견된 금제(金製) 사리봉안기에 좌평 사탁적덕의 딸이 등장해 학계의 관심을 모았다. ‘서동요’의 주인공인 선화공주가 미륵사 창건을 발원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과 달라서였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일본서기》등을 참고해 의자왕은 사탁씨의 소생이 아니라 선화공주의 소생이며, 미륵사 창건의 계기를 마련하고 그 일을 시작했던 선화공주가 일찍 세상을 뜬 탓에 사리봉안기에는 사탁씨 왕비의 이름만 등장하는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한 백제 무왕이 미륵사를 창건하게 된 것은 신라를 불국토로 만들려고 한 진평왕을 벤치마킹한 결과라고 해석한다.

저자는 “삼국유사는 상상력의 보물창고요 우리 문화의 비밀을 푸는 집코드”라며 당나라 대군을 바다에서 물리친 명랑법사의 문두루 비법, 황룡사 대종과 9층탑 조성 등의 이야기들을 통해 불국토를 꿈꿨던 신라인의 이상과 열망을 풀어냈다. 행간의 뜻을 읽어내는 저자의 상상력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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